추억의 사진관


콩나물-시루같았던-학교
6.25전쟁이 끝난 1970년대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을 참 많이 낳았어요. 몰려든 광부들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더 많았죠. 그래서 강원도에서 가장 학생수가 많은 학교가 사북초등학교와 고한초등학교였습니다. 고한에는 초등학교가 5개였으니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살았는지 모른답니다. 교실은 부족하고 아이들은 많으니 한때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또 운동회 날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찾지 못해 헤메는 진풍경들을 자아내기도 했었답니다.
kimjinyong
  • 4년 전
탄광촌-물을-새카만-색이에요
탄광촌은 산과 들 그리고 물까지 모두 새카만 색이에요. 산 여기저기에서 캐내고 버려진 폐석덤위와 파들어간 갱도에서 까만 물이 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철과 아연, 비소 등 몸에 안좋은 중금속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미관상 뿐만 아니라 몸에도 아주 않좋아요. 탄광촌 아이들은 그런 산과 강물만 보았기 때문에 그림속에서도 강물은 새까만 색이었습니다.
kimjinyong
  • 4년 전
사택촌-풍경
1970~80년대 탄광촌은 하루 지나면 마을 하나가 생겨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늘어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탄광 회사들은 연탄 찍어내듯이 사택촌을 건설했습니다. 방 하나, 부억 하나가 전부였지만 광부와 가족들에겐 더 없이 소중한 보금자리였습니다.
kimjinyong
  • 4년 전
18번가-입구
사진 속 이 풍경이 1980년대 고한18번가 입구 풍경이에요.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예쁜 산책로가 조성되었지만 예전엔 단 한평의 땅만 있어도 어김없이 집이 들어서곤 했습니다. 물론 합법적이진 않았을거요.
kimjinyong
  • 4년 전
선탄부를-아시나요?
선탄부는 광부들이 지하에서 캐어낸 석탄더미에서 쓸모없는 돌맹이를 골라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로 여성들이 그 일을 했는데요. 석탄을 캐어내는 일보다는 육체적으로 힘이  덜 들었기 때문입니다. 앞집 아주머니도 선탄부 일을 했었는데 그 분은 아저씨가 탄광사고로 돌아가시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선탄부 일을 하셨다. 
kimjinyong
  • 4년 전
학교가는-길
학교 가는 길은 항상 탄먼지가 자욱했습니다. 커다란 탄을 가득 싫은 제무시가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면 새까만 탄먼지가 얼굴을 덮치곤 했습니다.
kimjinyong
  • 4년 전
광부의-삶_갱목지기
광부의 삶은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탄맥을 찾아 굴을 뚫고 탄을 캐낸 자리엔 버팀목을 세워가며 일을 합니다. 갱목을 세우는 일을 지주시공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광부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지요.
kimjinyong
  • 4년 전
직장-새마을금고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사람들이 탄광촌까지 찾아올때는 모진 각오가 있어야 했습니다. 딱 3년만 아니면 5년만 열심히 돈 벌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3년은 30년 아니 50년이 된 분들도 많습니다. 부푼 꿈을 이루기 위해 한푼 두푼 열심히 저축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던 사람들을 위해 삼척탄좌에서는 회사내에 새마을금고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kimjinyong
  • 4년 전
1980년대-고한역-인근
1980년대 고한읍은 석탄생산량도 많았고 사람도 가장 많이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사택도 짓고 학교도 짓고 은행과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고한읍은 사북읍에 편입되어 있었지만, 사북읍의 인구가 6만여명까지 증가하게 되자 1985년 사북읍에서 고한읍을 떼어내 별도의 읍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한읍의 인구는 3만 3천명이었습니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도 이맘때 나온 말입니다.
kimjinyong
  • 4년 전
새마을운동을-하나봐요
모든게 열악하고 부족했던 시절, 정부가 해줄수 있는 건 거의 없었고, 모든건 주민들이 스스로 해나가야 했습니다. 신작로 깔고 나무도 심고 집도 짓고 마을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은 새마을운동이라는 정부의 지시에 의해 주민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kimjinyong
  • 5년 전
사람들이-모여들었어요
정부 주도로 시작된 탄광산업 개발정책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던 산골마을 고한은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일어나게 됩니다.
kimjinyong
  • 5년 전
석탄개발이-시작되었어요
고요했던 산속 마을에 석탄이 발견되었네요. 6.25전쟁 직후 급심했던 가난과 군사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정권은 경제발전을 기치로 내걸고 산업화 정책을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건데, 당시만해도 전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석유나 가스를 수입해올 달러가 있을리가 없잖아요. 업친데 덮친 격으로 1966년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국내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가 절실했습니다. 당연히 강원도 정선과 태백에서 발견된 석탄은 가뭄에 단비와 같았겠죠? 사진 속 풍경은 고한시장과 고한역 모습입니다
kimjinyong
  • 5년 전
선주민들
옷차림새가 조선시대인줄 알겠어요. 고한에서 석탄이 발견되기 전에는 가파른 산비탈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지으시던 선주민 약 200여호가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kimjinyong
  • 5년 전